지난 2010년 11월 인터뷰를 하면서 잦은 이직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다. 회사측에서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면접관에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잦은 이직'이 아니고 '많은 경험'이었습니다"라고 답변을 했다. 같이 일을 하게됐지만 그 면접관이나 나의 의도가 아니게 3개월만에 철수를 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잦은 이직의 이유는 90% 이상이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대체로 한가지다. "죽도록 일하다 죽어라"는게 그것인데 아이들은 일주일이면 아빠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가정과 직장의 적절한 줄타기가 중요한데 그게 불가능한 경우가 첫번째고 회사 자체의 비전의 부재가 두번째다. 나같은 이상주의자에게 "꿈같은 건 없지만 월급 300 줄테니 그냥 죽도록 일이나 해라"는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 근무조건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기억에서 "아빠"라는 자리가 없어지는건 죽음 그 자체다.



근데, 스스로 비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생각하는 비전에 대해서는 아직 한번도 생각을 못해봤다는게 참 부끄럽다. 

수영이가 6살때의 일이다. 집에서 국어랑 수학 학습지를 했는데 처음엔 재미있게 잘 했었다. 근데 조그만게 매너리즘에 빠진건지 ㅡㅡ 단순 반복적인 학습에 지친갔던 모양이다. 책상에 앉아 울고 있을때가 있었는데 처음엔 하기 싫어 꾀를 부리는 거라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도 개선이 되지 않아 "수영아, 힘들면 학습지 하자 말자?!"라고 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힘들어도 학습지는 계속 할거라고 했다. 얼마뒤면 또 울면서 학습지를 하고.... 부모된 입장에서 맘이 편할리 없다. 해서 다시 "수영아, 학습지 그만하자. 나중에 더 자라서 하고 싶으면 하자?!"라고 했더니 그래도 계속 한단다. "힘들어 울면서 왜 자꾸 할려고 해?"라고 물었더니 "다른 친구들 보다 더 잘하고 싶어서"라고 하는 소리에 나도 울뻔 했다. 그때까지 난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힘겹게 학습지에 메달리는지 몰랐다. 그리고는 한동안 학습지를 잘 했다.

지금 수영이는 7살이다. 몇일전에 "아빠, 우리도 2층 집에서 살면 안돼?"라고 하길래 "왜?"라고 물었다. "그럼 1층은 거실하고 부엌, 서재로 쓰고 2층은 엄마 아빠 방하고 째째방하고 내방 쓰면 좋잖아"라는 대답에 잠시 멍...했다. 정신을 차리고 "누가 2층 집에 살아?"하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대답을 한다. "그럼 어디서 봤어?"라고 다시 물으니 살짝 시니컬하게 "아니야 그냥 내가 생각한거야"라고 대답하길래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7살이 되고 처음으로 학습지 숙제가 힘든지 책상에 앉아 울먹이고 있는 모습을 봤다. "수영아 학습지 힘들면 좀 쉴래?"라고 물었더니 "언제까지?"라고 묻는다. "완전히 끊어버리지 뭐"라고 답해줬더니 삐쭉거린다. 그때 몇일전에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서 "수영아, 너 놀이방에서 너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 없지?"라고 물었더니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봐, 수영이가 힘들어도 학습지 하니까 제일 똑똑하잖아. 그리고 너 2층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잖아. 공부 잘하면 나중에 2층 집에서 살수도 있어"라고 해줬더니 싱글벙글 하면서 바로 앉아 학습지를 했다. 근데 다음 날도 힘들어 했다. "수영이 공부 열심히 하면 2층집이 아니고 3층 집에서도 살 수 있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다시 숙제를 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성인들도 리더가 직원들에게 비전을 재시하고 지속적으로 리마인드 시켜줘야하듯이 아이들에게도 지속적인 비전의 리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근데...... 난 거짓 글을 쓰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어제 수영이가 숙제를 힘들어 해서 옆에 앉아서 "공부 열심히 하면 100층짜리 집에서 살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는 모습을 보고 일어나서 거실로 가려고 했는데 수영이가 부른다. "아빠 가지말고 옆에 있어줘"...... 보통 수영이는 숙제를 혼자한다. 모르는게 있으면 거실로 와서 "아빠(또는 엄마) 이거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본다. 아이에게 필요한건 "100층짜리 집"이 아니라 "말도 안되는 100층짜리 집에서 살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아빠"였던 것이다. 

어제 읽은 기사[조기교육의 심각한 폐해 사례 등]들이 내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난 과연 좋은 아빠인가........



  1. BlogIcon aryasu 2011.04.11 20:46

    오랜만에 들렸습니다. ^^
    게으른 농사꾼이라서, 게으름이 병으로 발전해서 그렇답니다. --; ^^
    알통님 글은 가끔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말을 골라서 한다면, 사람냄새가 나서 좋습니다.
    애인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 본듯한 짜릿함도 있고요. ^^
    저는 아직 미혼이라 나만의 가족에 대한 애착, 사랑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때론 간접경험을 통해 이러리라는 것만 느낄 뿐인데, 째째 이야기,
    수영이 이야기 들으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 나이에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런 모습들을 그릴 수 있을까 물어보지만,
    결국은 '자신 없음'으로 끝나게 되더군요. ^^
    훈훈한 정이 배어 있는 글, 볼 때마다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커져만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